외롭고 좁고 쓸쓸한 ‘미션 임파서블’이었어

호텔 주방 보조·가죽 세공 공장 야간 근무자·대형마트 도넛 판매원·주유소 주유원 등 한 달 동안 네 군데에서 일했다. 알바들이 겪는 ‘꺾기’를 피하고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는 불가능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시사IN 조남진
미혼 단신 근로자의 생계비 가운데 주거비 지출이 33만원가량으로 가장 많았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을 살려면 고시원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자고 일어나서 보니 발톱에 피멍이 들었다. 엄지발가락이 시커멓게 부었다. 서울 아현동 한 고시원에서 하룻밤 자고 난 후 생긴 상처였다. 고시원 방은 가로·세로 각각 1.85m. 침대가 있었는데 책상과 붙어 있었다. 자다가 움직이면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 잠결에 부딪힌 상처였다. 이런 상처가 계속 생겼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가 2015년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며 참고자료로 삼은 미혼 단신 근로자의 월평균 생계비는 150만6179원이다. 내가 하루 8시간 최저임금 노동을 해서 벌 수 있는 돈 116만6220원보다 많다. 단순 셈법으로도 34만원 적자였다. 적자를 메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일하거나 생활비를 아껴야 한다. 난 두 가지를 병행했다.

미혼 단신 근로자의 월평균 생계비 가운데 주거비는 33만3042원이다. 지출 항목 가운데 가장 많다.

4월21일. 첫 번째 일자리 ‘호텔 주방 보조’

주거비부터 아끼기로 했다. 서울 아현동에 있는 24만원짜리 고시원을 구했다. 김연희 기자가 택한 신림동 고시원에 비해 11만원이 쌌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방이 더 작았다. 내가 사는 방에는 화장실과 세면대가 따로 없었다. 침대·책상·책꽂이가 서로 연결된 일체형 가구에 작은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한 층 전체가 고시원인데 이처럼 잠만 잘 수 있는 방이 44개였다. 한 방에 두 명이 살기도 했다. 50여 명이 사는 이 고시원에 고시생은 한 명도 없다. 40~50대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공동으로 쓰는 샤워 부스와 화장실이 3개씩 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아침마다 붐볐다. 내 방에서 가장 가까워 주로 이용했던 화장실은 잠금장치가 고장났다. 변기에 앉아 큰일을 볼 때면 문고리를 잡아야 했다. 세탁실에 공동 세탁기 2대, 조리실에 가스레인지 1대가 있다.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해 일주일마다 일자리를 달리했다. 김연희 기자처럼 한 곳에서 일할 경우 꺾기를 자주 당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 내가 구한 일자리는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호텔의 주방 보조였다.

낮 12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했다. 샐러드용 채소를 주먹만큼 뭉쳐놓거나 인삼에 대추를 끼우는 일 따위를 했다. 첫날 알바 동료는 네 명이었다.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조건은 시간당 최저임금 5580원, 9시간 근무시간 가운데 1시간 저녁식사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받기로 한 일당은 8시간 노동 대가였다.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근로조건에 명시되었던 저녁 식사를 첫날 먹지 못했다. 출근할 때 식권 한 장을 받기는 했다. 호텔 직원용 푸드코트 식권이었다. 하지만 식권을 쓸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저녁 7시가 넘어 동료 알바생이 저녁 식사에 대해 묻자 주방장은 “원래 바쁠 때는 먹지 못한다. 푸드코트에 가보고 식당 닫았으면 다시 와서 하던 일을 해라. 대신 한 시간 시급을 더 주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9시간 일한 돈을 받았다. 저녁을 못 먹었다는 허기보다는, 5580원을 더 받았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상원(27세)
▶4월20일~5월20일
1주 호텔 주방보조(시급 5580원) 낮 12시~밤 9시
    2주 소규모 가죽공장(시급 5580원, 주휴수당 포함 7000원) 밤 10시~다음 날 오전 8시
    3주 대형마트 협력업체 판매 행사(시급 6000원) 오전 9시~오후 3시
    4주 주유소(시급5600원) 낮12시~오후6시
▶시급 5800원 오전 10시~오후 6시, 꺾기(조기 퇴근) 17회
▶총 노동시간 161시간
사전 소지품 : 티셔츠 2개, 셔츠, 청바지, 운동화, 양말 두 켤레, 속옷 3개, 수건 3개, 노트북,
칫솔, 치약, 샴푸, 비누, 스마트폰, 이어폰
고시원 비용 35만원
서울 관악구 신림동

둘째 날부터 저녁밥 먹을 시간을 주었는데 식사 시간이 15분 남짓이었다. 저녁 시간 1시간 보장이라는 문구는 현장에서 통하지 않았다. 15분간 저녁을 먹고 45분은 일했다. 물론 그 시간은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았다. 둘째 날부터 8시간45분을 온전히 서 있었다. 다리가 저려 참기 힘들 땐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요리사 가운데 한 명이라도 “알바 어디 있어?”라고 소리치면, 그것으로 달콤한 화장실 휴식은 끝났다. 첫날 함께 일한 동료 알바생 네 명 가운데 둘째 날 출근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첫날 함께 퇴근한 명수(26·가명)는 ‘공부하는 노동자’다. 요즘 공부하는 노동자는 두 종류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하는 대학생과 생계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는 취업 준비생. 명수는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갔다. 최근에 졸업했다. 공부하는 노동자는 저임금과 시간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부모 도움 없이 취업 준비를 하려면 명수처럼 하루 8~9시간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취업 준비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 악순환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할 돈도 시간도 부족해지고, 결국 최저임금 노동을 벗어나지 못한다. 공부하는 노동자 명수도 그렇게 최저임금 노동이 본업이 되다시피 했다. 그는 퇴근하며 “시급에 비해 일이 너무 힘들다”라고 말했다. 명수 역시 이튿날 출근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 첫 주에는 ‘노동’만 있고, ‘생활’은 없었다. 퇴근하면 곧바로 고시원 방으로 돌아와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생활은 이어가야 했다. 꼭 필요한 옷가지만 들고 나온 터라 면도기부터 샀다. 1000원짜리 일회용 면도기 네 개를 사서, 듣지 않는 면도날과 씨름하다 얼굴에 여러 군데 생채기를 냈다. 이렇게 첫 주는 후회의 연속이었다. 24만원짜리 고시원 방은 방음에 취약했다. 퇴근해 문을 열면 고시원 총무가 내 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간 줄 착각할 정도였다. 옆방 사람이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고시원을 옮기고 싶어도 옮길 수 없었다. 이미 낸 24만원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옮기는 순간 적자의 늪에 빠진다.

시간 빈곤은 내게도 닥쳤다. 최저임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 첫 주말에 구한 단기 일자리는 웨딩홀 보조였다.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13시간을 일했다. 시간당 6000원씩, 7만8000원을 벌었다.

4월29일. 주휴수당으로 버틴 ‘야간 노동’

©시사IN 이명익
기자가 일한 주유소의 다른 알바생은 ‘주독야경’을 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9시간 가까이 서 있어야 할 주방 보조 일을 겪은 뒤 다른 구직자들처럼 나 역시 편한 일을 찾았다. 가죽 세공 공장은 여러모로 최적의 일터처럼 보였다. 작업이 간단하고 쉴 시간도 충분했다. 시급 5580원인데, 주휴수당 지급도 약속했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를 하며 일한 4곳 가운데 유일하게 주휴수당을 받았다. 단, 근무시간이 밤 10시부터 이튿날 아침 8시까지였다. 야간 노동이지만 야간근무수당은 없었다.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은 야간수당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가죽 세공 공장으로 향했다. 가서 보니 짝퉁 가방의 본을 뜨는 곳이었다. 복사기처럼 생긴 기계에 가죽 도안을 넣은 후 작업이 완료되면 남은 찌꺼기를 진공청소기로 정리했다.

일 자체는 쉬웠지만 예상대로 생활은 불가능했다. 작업을 마치고 공장 밖으로 나오면 헛구역질이 났다. 합성피혁 타는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침 8시 퇴근 후 곧바로 잤고, 일어나자마자 다시 출근했다. 낮과 밤이 바뀐 엿새를 일하고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내 손에 들어온 돈은 35만원이었다.

‘생활’을 하고 싶었다. 친구들을 만났고, 소개팅도 했다. ‘최저임금 노동자=3포 세대(결혼·연애·출산 포기)’라는 공식을 깨고 싶었다. 소개팅 자리에 멀끔하게 나가려면 전기면도기가 필요했다. 일회용 면도기를 사용했다가는 반창고를 얼굴에 덕지덕지 붙이고 나가야 할 판이었다. ‘브랜드’가 알려진 전기면도기는 전부 2만원이 넘었다. 고시원 인근 지하상가에서 1만3000원짜리 면도기를 찾았다. 날은 무뎠고 모터는 약했다. 10분을 비벼도 수염이 깎이지 않았다. 또다시 후회의 연속이었다. 빨래를 실내에 널다 보니 곰팡이 냄새가 고스란히 배었다. 섬유 탈취제로도 가시지 않는 구린내였다. 새 옷을 사느라 사흘 일당을 썼다. 추가로 얼마나 더 지출하게 될지 걱정되었다.

소개팅 장소는 신촌. 치킨을 먹고 2차로 막걸리를 마셨다. 초조했다. 닭 한 쪽, 술 한 잔 값이 시급으로 환산되었다. ‘쿨함’은 천성이 아니라 자신이 받는 임금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사람의 태도에 꽤 큰 영향을 끼친다. 대화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1차는 내가 내고, 2차는 그녀가 냈다. ‘주휴수당을 받지 못했다면…’ 머릿속 가계부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난 여지없이 3포 세대였다.

5월6일. “수줍어하지 마. 손님들은 안 들으니까”

©시사IN 신선영
대형마트의 도넛 판매자로 일할 때 건강진단 결과서가 없어서 다른 사람의 명찰을 달고 근무했다.

“어서 오세요. OO도넛 원 플러스 원 행사 중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도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매니저가 말했다. “수줍어하지 마. 어차피 손님들은 네가 뭐라고 하든지 안 들으니까.” 그는 내게 ‘신기수’라는 명찰을 건넸다. 면접 자리에서 건강진단 결과서(보건증)가 없다고 하자 다른 사람 명의로 등록하겠다고 했다. 음식을 다루는 일이라 건강진단 결과서를 내야 한다. 당장 일할 사람이 급한 업체는 건강진단 결과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우선 다른 사람 명찰을 달고 일하라고 했다. 난 그렇게 대형마트에서 도넛 판매자로 일했다. 시급 6000원,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는 조건이었다. 이곳에서도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난 마트에 고용된 게 아니라 마트에 입점한 도넛 회사 알바생이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이 마트를 움직이는 이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노동자들이다.

퇴근 후 도넛 6개를 받았다. 점심 대신이다. 판매가로 따져보면 3000원어치다. 이곳에서도 점심과 점심 먹을 시간을 따로 주지 않았다. 저녁은 고시원 주변에서 해결하고, 도넛은 야식으로 먹었다.

대학 친구들 모임에 두 번 나갔더니 씀씀이가 컸다. 취기가 최저임금 노동자라는 걸 잊게 했다. 다음 날 아침 가계부를 적으며 고시원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 뒤부터 술은 혼자만 마셨다.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인 고시원 사람들도 혼자 술을 마신다. 방에서 홀로 취한 채 잠을 청하면 소음도, 악취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의 헛헛함은 어쩔 수 없었다.

돈을 아낄 방안을 찾아야 했다. 어버이날 선물은 꼭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장 담배부터 줄였다. 처음에는 담배를 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호텔 주방, 가죽 공장, 마트에서도 담배 피우는 시간은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끊지 못했다. 대신 줄였다. 엿새 동안 아낀 담뱃값을 모아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버지에게 드릴 등산용 바지를 사려고 아웃도어 매장을 둘러보았다. 어머니에게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물하고 싶었다. 가격표를 보고 포기했다. 백화점을 나와 지하철역 매장에서 아버지 선물로 트레이닝 바지를 샀다. 어머니 선물은 품목을 바꿔 볼펜 10개를 샀다.

5월14일. ‘333 법칙’이 담긴 근로계약서

주유소가 내 마지막 일터였다. 시간당 5600원. 처음으로 근로계약서라는 것을 써보았다. 표준 근로계약서에는 근로시간이 낮 12시부터 22시까지로 표기되었고 휴식시간은 매시 10분이었다. ‘333 법칙’을 어기면 계약을 해지당했다. 근무태도가 불량해 경고를 3회 이상 받거나, 무단결근을 3회, 고객에게 3회 이상 불친절해도 해지 사유에 포함되었다.

그래도 이곳 주유소 동료들이 살갑게 대해줬다. 처음으로 제때에 밥을 주었고 한산한 시간에는 의자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다. 근무 사흘째 조수석에 휘발유를 끼얹는 대형 사고를 쳤는데도 변상을 요구받거나 해고당하지 않았다.

단, 벌이는 시원찮았다. 처음 사흘은 3~4시간만 일했다. 다른 알바생은 매일 10시간 정도 근무한다. 내게 주유법을 가르친 원준(22·가명)은 6개월 전부터 일했다. 한 번에 차 3대를 받는 베테랑이었다. 나처럼 주유소 일을 처음 하는 알바생이 오면 그가 교육했다. 전문대를 졸업한 원준은 아침에 미용학원에 다니고,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주유소에서 일한다. 밤까지 주유소에서 일하다 보면 정작 다음 날 학원에서는 졸기 일쑤였다. ‘주독야경’을 하는 원준이가 받는 시급도 나와 같은 5600원이었다. 자취를 하는 그도 방값과 학원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고 한다. 원준은 매월 첫째 수요일만 쉬었다.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최저임금 체험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고시원을 정할 때도, 일자리를 구할 때도, 하다못해 면도기를 살 때도 늘 고민이었다. 매 순간 신중하게 판단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15만5674원 적자. 온몸의 생채기와 맞바꾼 건 적지 않은 빚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면 적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줄어든 휴식시간 탓에 훨씬 지쳤을지 모른다. 친구들과 약속을 없앴다면 흑자를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받은 위로가 아니었다면 쓸쓸함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최저임금 한 달 살기는 생존 체험이 아닌 생활 체험이 목표였다. 애초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를 흑자로 끝내는 건 불가능했던 게 아닐까. 2016년 최저임금은 6월 말에 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