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임은 왜 '해피엔딩'이 없어?

신한슬 기자 hs51@sisain.co.kr

©시사IN 윤무영
신한슬 기자는 시뮬레이션 게임 시나리오를 종이에 직접 그렸다. 꺾기 등 현장에서 발생한 각종 변수를 게임에 반영하기 위해 포스트잇을 활용했다.

“제가 제 무덤을 팠습니다.”
밤새워 엑셀과 씨름하다 SNS에 비명처럼 남겼다. 지인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걱정하는 댓글을 남겼다. 편집국 선배들은, 기사도 안 쓰는 것 같은데 매일 야근하는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집에 안 가고 뭐 하니?”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저… 게임형 기사 써요.’

‘최저임금으로 한 달 살기’ 기사를 쓰기 위해 <시사IN> 신입기자 3명은 역할을 분담했다. 김연희·이상원 기자는 체험을 통해 정말로 최저임금으로 근로자의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지 검증했다. 한 달간 집에도 회사에도 나오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해 고시원에 살았다. 진짜 최저임금 노동자로 살았다. 나는 두 기자가 대표할 수 없는 다양한 연령대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 양측 위원을 취재했다. 다른 나라의 최저임금 사례도 조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떨어진 특명! 디지털 인터랙티브를 만들라는 숙제가 떨어졌다.

<시사IN>은 크라우드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다룬 ‘응답하라 7452’를 선보인 바 있다. 김동인 기자의 역작이었던 ‘응답하라 7452’는 오픈하자마자 서버가 다운될 만큼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신입기자 사수(교육 담당자)인 고제규 기자는 “응답하라 7452를 뛰어넘어라” 하고 주문했다.

숙제였다. 한 달간의 체험 기사를 단지 묶어내는 인터랙티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사수 선배한테 “못 만들 거 같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사수는 “그럼 그렇지. 김동인 기자한테 밟혔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오기가 생겼다. 보란 듯이 잘 만들고 싶었다. 책상 앞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국내외 언론을 가리지 않고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를 다 찾아보았다.

한 기사가 눈을 사로잡았다. 미국 월간지 <와이어드><치열한 자본주의(Cutthroat Capitalism)>라는 ‘게임형 인터랙티브’였다. 소말리아 해적들과의 인질 협상을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 독자가 직접 몸값을 흥정하거나 공격을 한다. 게임을 해보니 인질 구출이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와이어드>의 치열한 자본주의 게임 화면

‘바로 이거다!’ 정말 만화처럼 무릎을 탁 쳤다. 독자들이 시뮬레이션 게임의 ‘플레이어’가 된다면 두 기자의 체험을 생생한 간접체험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기자는 최저임금이라는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양변기가 딸린 고시원은 사치일까? 어버이날 선물을 사야 할까? 친구가 만나자는데 돈이 들지 않을까? 시뮬레이션 게임을 ‘잘 짜면’ 이 고민을 플레이어(독자)들이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임 롤모델은 <프린세스 메이커 2>로 정했다. 어렸을 때 제일 좋아했던 게임이다. 요정이 데려온 ‘딸’을 ‘아버지’가 되어 키우는 게임이다. 초반에 아버지 직업으로 뭘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금 사정이 달라진다. 딸의 일정을 한 달 단위로 아르바이트, 과외 수업 등으로 채워 놓으면 날짜가 지나가면서 딸의 매력, 체력, 지능 등의 ‘스펙’이 달라진다. 이 스펙에 따라 최종적으로 딸의 직업이 달라진다. 사수에게 ‘프린세스 메이커’를 말했더니, 사수는 “프린스 메이커라고?”라며 반문했다. 게임이라곤 전혀 해보지 않은 사수는 그래도 내게 전권을 주고 맡겨주었다.

시나리오를 짰다. 김연희·이상원 기자 중 한 ‘캐릭터’를 선택해서 한 달을 산다. 말하자면 ‘최저임금 노동자 메이커(?)’다. 플레이어는 4주 단위로 특정 소비 활동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양변기가 있는 방, 어버이날 선물, 소개팅 따위 실제로 두 기자가 고민했던 선택 항목들이다. 소비하면 지출이 늘어나는 대신 삶의 질이 높아진다. 관련 일러스트도 감상할 수 있다. 하나도 소비하지 않으면 게임 내내 일만 하다 끝난다. 흑자가 나겠지만 단조롭다. 삶의 질도 낮아진다. 게임 속 사건이나 ‘NPC(고시원 총무, 사장님 등)’의 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수입·지출 액수까지 모두 실제 이상원·김연희 기자의 일기와 가계부 내역을 바탕으로 했다. 삶의 질을 최대한 높이면서 적자를 피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하지만 <프린세스 메이커 2>처럼 식료품·생활용품 등 모든 소비 항목을 플레이어(독자)가 선택하게 할 수는 없었다. 변수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내 능력의 한계였다.

산 넘어 산. 시나리오가 그대로 게임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수 고제규 기자가 프로그래머와 게임 아이콘을 그려줄 웹디자이너를 섭외해주었다. 프로그래머는 게임과 유사한 광고를 만들어보았고, 디자이너는 게임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이들과 미팅을 거듭해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사수가 경쟁을 부추기던 김동인 선배가 800쪽에 육박하는 html 기본 서적을 추천해 주었다. 첫 장을 읽다가 나가떨어졌다. 급한 대로 종이에 각종 변수를 화살표 방향으로 표시하는 기초 설계도를 그렸다. 그 설계도를 다시 파워포인트로 만들었다. 그게 그대로 기획서가 되었다. 가계부에서 1주일간 쓴 돈을 항목별로 정리해 교통·음식·생활용품 등 기본 지출 금액을 정했다. 콘텐츠 사업단 소속 안희태 선배가 중간에서 프로그램 개발자와 ‘통역’을 해주었다. 개발자는 엑셀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엑셀 파일에 담았다. 여기서부터 ‘엑셀 지옥’이었다. 또 시간과 싸움이었다. 체험과 게임 만들기가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하루하루 체험이 그대로 게임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며 시나리오가 조금씩 수정되었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가계부는 아주 쉽게 적자가 난다

가장 난감했던 건 김연희 기자가 연속 ‘꺾기’(임금을 줄이려고 일방적으로 조기 퇴근 시키는 것)를 당했을 때였다. 예상 수입은 110만원 초반이었는데 실제로는 88만5000원을 받았다. 결산 내역이 다 달라졌다. ‘흑자 엔딩’ 확률이 뚝 떨어졌다. 실제로도 생활하기 어려운 수입이었다. 꺾기를 당하지 않을 것으로 가정하고 엑셀에 정리한 가계부 시나리오 트리를 다 엎었다. 현실은 게임보다 더 예측 불가능했다.

게임 디자인을 해준 작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작업을 도와주는 친구가 ‘이 게임은 왜 해피엔딩이 없냐’고 물었어요. 적자가 나도 슬프고, 흑자가 나도 슬프다고… 작업하다가 울 뻔했어요.”

김연희·이상원 기자의 체험 기사에 달린 날선 댓글 중에는 “나는 80만원으로도 사는데 120만원이나 쓰다니”라는 내용이 있었다. 실제로 인터뷰했던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 위원도 평균 수준의 생계가 아닌 ‘최저 수준의 생계’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숨만 쉬고 산다면 최저임금으로도 흑자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건강한 삶’ ‘안정적인 삶’ ‘지속 가능한 삶’, 그리고 ‘풍족하지는 않아도 행복한 삶’은 불가능했다. 삶의 질을 높이려는 아주 조그만 시도에도 돈이 든다. 병에 걸리거나 일자리를 잃게 되면 말할 것도 없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가계부는 아주 쉽게 적자가 난다. 생활비 용도로 빚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뉴스가 이제는 생생히 와 닿는다.

기획자가 게임 개발에 대한 지식을 더 갖추었더라면 더 좋은 ‘게임 기사’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아쉽다. 그래도 한국 언론 중에서 시뮬레이션 게임형 기사를 쓴 건 ‘최초’라고, 소심하게 자랑해본다. 독자가 주체가 되는 기사, 쉽고 흥미로운 기사, 디지털 환경에 맞춤한 기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게 지금의 기자들이 당면한 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수습기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10년, 20년 꾸준히 우리 사회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