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도입 150일 독일에서 생긴 일

독일에서는 1월1일부터 최저임금으로 시간당 8.5유로(약 1만200원)가 적용되고 있다. 도입을 앞두고 노동계와 재계 사이에 논쟁이 치열했다. 우려했던 정규직 노동자의 실업대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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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노동계는 ‘최저임금 8.5유로’를 요구하며 시위를 한 끝에 최저임금법 도입을 관철시켰다.

뮌헨 슈바빙 구역에서 대형 맥줏집을 운영하는 마를렌 슈마허 씨는 올 1월부터 가욋일이 생겼다. 하루 영업을 끝낼 때마다 종업원 25명의 근무시간을 기록해야 한다. 한 달 동안 종업원들이 몇 시에 근무를 시작해 몇 시에 끝냈는지 꼼꼼히 적는 것이다. 이 작업에만 매일 1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고용주로서 기꺼이 해야 할 몫이다. 종업원 근무시간 기록은 세무서에 보고해야 하고, 어기면 벌금 3만 유로를 내야 한다. 지난 1월1일 최저임금법이 시행되면서 생긴 일이다.

노동계가 ‘전후 독일 최대의 사회개혁’으로 평가하는 법정 최저임금제 법안은 지난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올 1월1일부터 최저임금으로 시간당 8.5유로(약 1만200원)가 적용되고 있다. 이전에는 산별교섭으로 정해진 임금 하한선이 최저임금 기준이었다. 정부가 노사 교섭에 개입하기보다는 자율에 맡기는 전통 때문에 시간당 최저임금 역시 법으로 강제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저임금법이 통과되면서 법적 가이드라인이 생긴 것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도입되면서 전국 고용인원 중 4.4%가 혜택을 받게 됐다. 연방노동청이 파악한 전국의 최저임금 해당자는 약 370만명이다.

최저임금법은 2017년까지 과도기를 두어, 예외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2017년까지는 임금협약에 따른 업종별 최저임금과 업종별 특별임금이 병행 실시되는데, 그동안 농업 및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계절 노동자, 18세 이하 근로자, 봉사활동 종사자를 포함하는 명예직 종사자, 연수생, 그 외 12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는 새로 취업한 후 6개월 동안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에서 늦깎이로 도입한 시간당 최저임금의 수준은 낮지 않은 편이다. 룩셈부르크의 11.10유로, 프랑스의 9.58유로에 비해서는 낮지만, 7.43유로인 영국과 3.91유로인 스페인의 시간당 최저임금보다는 훨씬 높은 액수다.

최저임금제 도입을 앞두고 독일에서도 노동계와 재계 사이에 한국에서와 유사한 논쟁이 벌어졌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면 일자리가 감소하고 기업의 연쇄 부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한국 일각의 주장처럼, 독일에서도 최저임금을 법으로 강제하면 노동시장에서 소규모 영업장들은 종업원을 줄이고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 정규직 실업대란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뮌헨의 IFO 경제연구소도 최저임금제가 도입되면, 일자리가 90만 개는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시간제 일자리 ‘미니잡’은 23만 개 사라져

하지만 시행된 지 150일, 현재까지 결과를 놓고 보면 재계나 학계의 우려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단 정규직 노동자의 실업대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종전에 지급하던 시간당 평균임금과 최저임금의 차이가 크지 않은 업종이 많았기 때문이다. 건물청소 노동자는 시급 7.56~11.33유로, 건축사업장 노동자도 10.50~13.95유로(2013년 9월 기준)를 받아왔다. “전국 156개 노동청 지청에서 지난 3월에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5%가 최저임금제 도입을 크게 염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하인리히 알트 노동청장은 밝혔다.

최저임금법 시행 이후 줄어든 일자리가 있기는 했다. 정규직 일자리 대신 ‘미니잡’이라 불리는 시간제 일자리다. 연금 수령자와 청소 노동자 등 저소득자들이 부업으로 주 15시간 일하고 월 450유로(약 54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이른바 ‘미니잡’(일명 ‘450유로 일자리’) 약 23만 개가 사라졌다. 미니잡이 줄어든 것을 두고 찬반양론이 구구하다. 미니잡 감소를 최저임금법 도입에 따른 부정적인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나쁜 일자리를 줄이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독일 노동총동맹은 미니잡 없애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최저임금법을 개정·보완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개정 의견을 두고 대연정 파트너인 사민당과 기민·기사당 연합 사이에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노동계도 반발한다. 경영자총연맹과 기민·기사당 일부에서 주장하는 최저임금법과 노동법의 수정 요구에 라이너 호프만 노동총동맹 위원장은 “최저임금제 도입은 10년에 걸친 투쟁의 성과물이므로 수정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사민당 소속인 안드레아 날레스 노동장관도 법 개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뚜렷이 했다.

한국 최저임금 OECD 순위는?

신한슬 기자 hs51@sisain.co.kr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법으로 최저임금을 정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26개국이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5580원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먼저 최저임금 수준을 놓고도 노동계와 사용자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크다. 노동계는 OECD 통계를 근거로 하위권이라고 주장한다. OECD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일제 노동자 임금의 ‘평균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35%로, OECD 회원국 가운데 20위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반면 재계는 ‘중위값’ 대비 최저임금 수준을 자체 계산해보니 49.7%로 OECD 22개국 중 9위를 차지해 상위권이라 주장한다. 중위값이란 우리나라 노동자를 임금수준별로 일렬로 나열했을 때 딱 중간에 위치한 사람의 임금을 말한다.

3.18
2.52
2.50
2.48
2.46
2.46
2.40
2.32
2.25
1.93
1.51
1.43
1.36
1.19
1.12
1.11
0.78
0.76
0.75
0.74
0.74
0.60

2015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미국 달러로 환산해 단순 비교해보면, OECD 26개국 가운데 한국은 5.15달러(1083.3원 환율 기준)로 15위다. 오스트레일리아가 13.7달러로 1위, 룩셈부르크가 12.92달러로 2위다. OECD 평균은 6.5달러다. 최저임금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은 덴마크·노르웨이·아이슬란드·오스트리아·스위스·스웨덴·이탈리아·핀란드 등 8개 OECD 회원국을 포함하면 한국은 더 낮아진다. 이 8개국은 산업별·기업별로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자율적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는데 비조합원이나 외국인도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적용받는다. 노사가 체결한 최저임금 수준이 OECD 평균 이상이다. 2015년 스웨덴 호텔·레스토랑 노동자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약 14.28달러다. 노르웨이는 건설 노동자, 청소 노동자 등 몇 가지 직종만 단체협약에 최저임금이 존재한다. 2015년 노르웨이 청소 노동자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약 20달러다. 이들 8개국을 포함하면 한국 최저임금은 OECD 34개국 중 27위로 하위권에 해당한다.

다만 이렇게 미국 달러로 환산해 단순 비교하면 물가 등을 반영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시사IN>은 물가지수나 통화가치를 반영한 ‘빅맥지수’로 최저임금 수준을 환산해보았다. OECD 26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그 나라에서 빅맥(맥도날드의 대표 햄버거)을 몇 개 살 수 있는지 계산한 것이다. 빅맥지수를 적용해보니, 한국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법이 있는 OECD 26개국 중 13위였다. 한국은 1시간 일하면 빅맥을 1.3개 살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시간당 최저임금(약 1만4500원)으로 빅맥 3.18개를 살 수 있다. 네덜란드는 2.52개, 뉴질랜드는 2.50개를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