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받아도 가계부 보기 무섭네

시간당 최저임금 5580원으로 1주일 40시간을 일할 경우 주휴수당을 포함해 월급이 116만6220원이다. 2014년 1인 가구 월 가계지출 166만4787원에 못 미친다. 최저임금 수준의 봉급을 받는 여러 연령대 노동자들을 만났다.

신한슬 기자 hs51@sisain.co.kr


새 학기가 시작되는 지난 3월2일, 김종민군(17·가명)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프랜차이즈 고깃집으로 향했다. 아르바이트이지만 생애 첫 출근이었다.

김군은 요리사가 되고 싶어 특성화 고교 진학을 희망했다. 부모 반대로 인문계에 진학했다. 요리사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부모가 반대하는 진로여서 요리 학원비를 스스로 마련하려고 일자리를 구했다.

채용 사이트에서 확인한 조건은 ‘시급 5580원,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근무’였다. 시급은 법이 정한 2015년 최저임금이었다. 10원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 최저임금이 지켜진다면 월 40만원이 손에 들어온다. 한 달 학원비 20만원에 요리사 자격시험 응시료까지 댈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하지만 사장 셈법은 달랐다. 사장은 오후 6시30분까지 출근하라고 했다. 첫날부터 저녁 급식을 먹지 못한 채 식당으로 향했다. 근무 시작하고 이틀은 수습기간이라며 급여를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이틀 내내 손님이 무척 많아 정신없이 일했지만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시사IN 윤무영
10대 아르바이트 등 24세 이하 노동자 가운데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 비율이 26.3%에 이른다.

시급도 깎였다. 사장은 “첫 아르바이트이니 수습기간이 더 필요하다. 첫 달은 시급 4900원을 주고, 다음 달에는 5100원으로 올려주겠다”라고 말했다. 또 “그만둘 때 한 달 전에 알리지 않으면 ‘무단 퇴사’로 간주해 마지막 월급의 30%를 삭감하겠다”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김군은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5580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시급이 비슷하다는 사장의 말에 설득당했다. 근로계약서에 사인했다.

김군은 ‘뒷주방’(가게 뒤편의 작은 싱크대)에서 고기를 굽는 열판을 닦았다. 손님이 많은 금요일 저녁에는 밤 12시에 퇴근하기 일쑤였다. 같이 일하던 동료 아르바이트생 두 명은 차례로 그만두었다. 대학생 누나는 시급이 너무 적어서, 학교 친구는 귀가시간이 늦어지자 부모가 화를 내서였다. 3월에 셋이 하던 일을 4월에는 김군 혼자 했다. 홀 서빙을 하고, 손님들이 먹고 간 자리를 치우고, 내일 쓸 반찬을 준비하고, 숯불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열판을 닦고 나면 팔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었다. 새 아르바이트생이 채용될 때까지 버텨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군은 지난 4월28일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일주일 전에 미리 이야기했지만, 사장은 마지막 월급의 30%를 깎았다. 김군의 생애 첫 노동은 그렇게 두 달 만에 끝났다.

최저임금법 위반에 대한 형사처분은 미미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를 세대별로 따져보면 24세 이하 세대와 60세 이상이 가장 많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4세 이하 노동자 가운데 26.3%가, 60세 이상 노동자 가운데 46.4%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있다. 24세 이하 노동자 가운데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 비율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2007년 19.4%에서 2014년 26.3%까지 치솟았다. 이들은 부당대우에 취약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에 아르바이트를 한 중·고등학생 가운데 44.8%가 최저임금 위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임금을 늦게 받거나 받지 못했다는 응답도 6명 중 1명(16.4%)꼴이었다. 김군 역시 5월20일 받기로 한 월급을 5월 말 현재까지 받지 못했다. 이상훈 노무사는 “수습기간을 이유로 시급을 깎을 경우 수습기간을 근로계약서에 명시해야 하며, 수습기간에 줄 수 있는 금액은 최저임금의 90%(5022원)다. 그 이하를 주면 최저임금법 위반이다”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사용주는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최저임금법 제28조). 하지만 실제 형사처분은 미미하다. 2014년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법 위반 사례 1654건을 적발했지만 형사처분은 16건에 그쳤다. 차액만 지급하면 처벌하지 않는 관행 때문이다. 올해 1월1일부터 법정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독일은 세무요원 1600명을 증원해 최저임금제 실시를 감시 감독하고 있다(30~31쪽 기사 참조).

©시사IN 이명익
10년차 대형마트 계산원 김효선씨는 시간당 최저임금보다 120원 많은 시급 5700원을 받는다.

인천의 한 대형마트에서 10년 동안 계산원으로 일한 김효선씨(37)는 오는 8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한동안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였다. 김씨는 시급 5700원을 받는다. 시간당 최저임금보다 120원 많다. 마트는 10년 일하나 한 달 일하나 시급이 같다. 처음에는 오전 근무로 시작했지만 야간 근무로 옮겼다. 새벽에 퇴근하는 대신 야근수당과 택시비가 붙기 때문이다. 대신 누군가를 만날 시간이 사라졌다. 저녁 시간을 통째로 포기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120만원 안팎이다. 부모를 부양하며 살기에는 빠듯한 돈이었다. 그래도 “기적적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약속했다. 예비 남편이 살던 자취방 보증금에 전세 대출을 더해 원룸 하나를 구했다. 조금이라도 알뜰하게 결혼하려고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을 팔고 있다.

자녀 계획을 묻자 김씨는 “두렵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결혼할 때가 되니 애들을 보면 더 예뻐 보인다. 풍족하진 않아도 남들만큼 키우려면 단 몇 푼이라도 저축을 해야 하는데 저축은커녕 빚이 늘어나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시간당 최저임금 5580원을 받고 1주일에 40시간을 일할 경우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월 116만6220원이다. 이 액수는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1인 가구 월 가계지출 166만4787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다. 부모를 부양해야 할 처지인 김씨가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다.

출산에 대한 김씨의 불안은 정경화씨(47)에게는 현실이다. 정씨는 남편과 피자 가게를 하다 경영이 악화되며 빚을 떠안았고, 그 여파로 이혼했다. 정씨는 다섯 살 터울인 두 딸을 혼자 키우기 위해 다양한 일자리를 거쳤다. 경기도 평택의 휴대전화 공장에서는 또래 아줌마 수백명과 라인에 앉아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부품을 점검했다. 그러다 피자 가게를 운영했던 경력을 살려보려고 피자 체인점 주방 보조로 재취업했다. 일은 잘 맞았지만 근무시간이 고작 하루 5시간이었다. 최저임금으로 하루 5시간 일하면 월급이 약 67만원이다. 3인 가구 생계가 불가능했다. 최저임금 노동자로서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생계를 꾸릴 수 있다.

©연합뉴스
시간제 일자리는 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진 경우가 많다. 사진은 한 디지털카메라 생산 라인.

지난 5월10일 OECD가 발표한 보고서 ‘경제위기 이후 최저임금:최저임금을 지급하라(Minimum Wages After the Crisis:Making Them pay)’에 따르면 정씨의 경우에 해당하는 한국의 외벌이 3인 가구가 빈곤선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당 59시간을 일해야 한다. 조사 대상 26개국 가운데 체코(79시간), 에스토니아(60시간)에 이어 세 번째로 주당 노동시간이 길었다. 그만큼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결국 정씨는 자동차 스테레오 공장의 2교대 야간 노동을 시작했다. 밤새 근무하면 월 140만원을 벌 수 있었지만, 귀를 때리는 기계소리와 납땜 냄새가 심했다. 퇴근하기 위해 일어나면 어지러워서 걷지 못했다. 6개월을 버티다 몸이 망가지면 아이들만 남겨진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지금은 부평의 한 대형마트에서 의류 판매를 하고 있다.

딸이 자라면서 생활비도 점점 늘었다. 첫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취업을 했다. 첫째가 돈을 벌면서 둘째 아이 교육비 지원이 사라졌다. 교과서 값으로 10만원, 교복 값으로 21만5000원을 지원받지 못했다. 아끼고 아껴도 정씨네 가계부는 늘 빠듯하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둘째에게 무항생제 음식을 사 먹이는 건 엄두도 못 낸다. 정씨는 “피부과 약을 사줄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마음 아프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성남의 한 대학병원에 미화원으로 일하는 이복순씨의 시급은 5822원이다.

빠듯한 살림살이라 교육비도 최소화해야 한다. 정씨는 “둘째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 ABC도 몰랐다. 남들은 초등학교 때 웬만큼 떼고 가는데 얘는 못하니까 창피해서 입 밖으로 영어를 내뱉지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가난의 대물림. 정씨가 가장 생각하기 싫은 미래다.

이복순씨(52)는 최근 시간당 임금이 올랐다. 5822원이다. 작년에는 당시 최저임금이었던 5210원을 받았다. 청소 용역업체에 고용된 이씨는 11년 동안 성남의 한 대학병원에서 미화원으로 일한다. 실험실과 연구실동을 담당한다. 다양한 약품을 버리지만 용역업체는 위험 약물에 대한 교육을 한 적이 없다. 깨진 실험용 체온계가 눈 옆을 스치고 지나간 적도 있다. 11년간 걸레를 짠 탓에 손가락과 손목 관절 주변을 6군데나 수술했다. 이렇게 위험에 노출되고도 월급명세서에는 매달 식대를 포함해 128만원이 찍힌다.

60세 이상은 46.4%가 최저임금 미만 수령

이씨 남편은 목수다. 비가 조금만 와도 건설 현장에 나갈 수 없다.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다. 맞벌이를 해도 보험료와 임대아파트 월세를 내면 생활비가 빠듯하다. 특히 겨울에는 난방비와 관리비를 합쳐 48만원이 나온다. 이씨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미용실에 가지 않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다듬는다. 서른두 살 아들은 사촌이 하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한다. “결혼시켜야 하는데…”라는 대목에서 내내 활기차던 이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시사IN 조남진
경비노동자 임헌관씨의 시급은 5580원. 고령일수록 저임금 노동자가 많다.

고령일수록 저임금 노동자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임금 노동자 가운데 55세 이상의 29.5%, 60세 이상은 46.4%가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다(2014년 기준). 장시간 노동을 하는 고령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병원비다. 인천 송도의 한 대학 캠퍼스 기숙사에서 경비 노동자로 일하는 임헌관씨(59)의 식탁에는 약병 4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각각 관절, 눈, 고혈압, 간질환 약이다. 임씨는 “어떤 때는 월급의 3분의 1을 의료비로 써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임씨의 시급은 5580원이다. 노후 대비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어떻게든 일흔 살까지는 일해야 한다.

한국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5월21일 OECD가 발표한 ‘모두의 문제:왜 불평등 개선이 모두를 이롭게 하는가(In It Together :Why Less Inequality Benefits All)’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49.6%(1위)로 조사 대상인 34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미국 21.5%, 일본 19.4%, 독일 9.4%였고, 네덜란드는 2.0%로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낮았다.

사용자의 최저임금 체감지수는?

31.82%
0.93%
28.10%
1.78%
21.07%
9.31%
9.50%
15.23%
6.20%
13.62%
3.31%
59.14%

<시사IN>은 2016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얼마로 결정되기를 바라는지 노동자와 사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노동자 쪽은 민주노총 산하 서비스연맹 소속 조합원을 대상으로 했고, 사용자 쪽은 중소기업중앙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했다. 서비스연맹 조합원은 주로 최저임금을 받는 마트 노동자들이다.

조사 결과 노사 간 의견 차이가 컸다. 설문에 응한 노동자 1197명 가운데 59.14%(699명)가 2016년 최저임금으로 시간당 1만원 이상을 바랐다. 그다음이 7000원 이상 8000원 미만 15.23%(180명), 8000원 이상 9000원 미만 13.62%(161명)였다. 7000원 이상으로 정해지기를 바라는 노동자가 전체의 87.99%(1040명)에 이르렀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 위원들은 지난해 인상률(7%)과 비슷한 수준을 반영해 최대 6000원 미만으로 정해지기를 바랐다. 중소기업중앙회 소속 사용자 245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읽혔다. 응답자 가운데 31.82%(77명)가 올해와 같은 5580원으로 동결되기를 바랐고, 5580원 이상 6000원 미만이 28.10%(68명)였다.

그런데 사용자 대상 조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6000원 이상 응답자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6000원 이상 7000원 미만으로 정해지기를 바라는 응답자가 21.07%(51명)였고, 7000원 이상 8000원 미만은 9.5%(23명), 8000원 이상 9000원 미만은 6.2%(15명), 1만원 이상도 3.31%(8명)였다. 사용자 위원들의 바람과 달리 6000원 이상으로 정해지기를 바라는 응답자가 모두 40.08%(97명)나 되었다. 사용자들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응답이 갈렸다. 50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한 사용주들은 6000원 이상 7000원 미만으로 결정되기를 바랐고, 10인 미만을 고용한 사용자는 6000원 미만에서 정해지기를 바랐다.

또 사용자들에게 선진국 대비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5580원)이 높은지 낮은지를 물었다. 이른바 체감지수를 물은 셈인데, 설문에 응한 사용자의 53.33%(128명)가 낮은 편이라고 답했다. 우리 여건에 적정한 편이라고 응답한 이는 37.5%이고, 높은 편이라는 응답은 9.17%에 그쳤다. 이런 정서가 반영되어 6000원 이상으로 인상되기를 바라는 응답이 40% 가까이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노동자들은 응답자의 98.83% (1180명)가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최저임금이 적다고 응답했다.